본문 바로가기

쉼터/알찬정보

옛 것에 대한 그리움-36-고수레, 귀신도 먹고 살아야 한다.

 

 

 

 

옛 것에 대한 그리움-36-고수레, 귀신도 먹고 살아야 한다.

 

고수레

 

산행이나 들놀이 또는 뱃놀이를 갔을 때 우리들은 음식을 먹기 전에 첫술을 떠서 ‘고수레’ 하고 주위에 흩어 뿌리는 것을 볼 수 있다. 또 논이나 밭에서 점심이나 참을 먹을 때도 농부들은 어김없이 첫술을 떠서 고수레를 외친다. 고수레는 짧은 기도문이면서 주문이고 간단한 행위이면서 심오한 신앙이다. 고수레는 자만에 빠지고 독선에 넘치는 현대인이 새삼 돌이켜보아 지금의 시대에 되살릴 수 있는 아주 작은 마음가짐이다.

고수레는 고시레, 고시래, 고시네, 고씨네 등으로 불리며 전국적으로 널리 퍼져 있는 민간신앙의 하나이다. 어원은 여럿이 있으나 어느 것이나 민간어원으로, 꿰어 맞춘 흔적이 있다. 단군 때 고시(高矢)라는 사람이 백성에게 농사 짓는 방법을 가르쳐주었으므로 여기서부터 유래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 고씨 성의 마음이 후덕한 지주를 존경해 소작인들이 예를 표시한데서 유래되었다는 말도 있다. 또 의지할 곳 없는 고씨라는 노파가 들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식사 때마다 얻어먹으며 연명하다가 노파가 죽자 노파의 외로운 넋을 달래고자 시작했다는 안동지방의 유래도 있다.

 

 

양평 지방의 유래는 또 다르다. 대갓집의 고씨 성을 가진 하인이 겨울에 빨래를 하러 냇가에 갔다가 떠내려오는 복숭아를 먹고 도손이라는 사내를 낳았는데 총명하나 신분이 낮아 도손은 중국으로 풍수를 배우러 갔고 그 사이 어머니가 죽자 도손은 풍수지리가 좋은 곳을 찾아 김제 만경벌에 어머니를 몰래 묻었다. 그 논 주인은 임자없는 무덤을 정성껏 돌보았는데 다른 논은 흉년이 들어도 그 논만은 풍년이 들어 그 소문이 주위에 퍼졌고 주위의 농부들도 그 무덤을 정성으로 보살피자 모두 풍년이 들었다. 이 소문은 널리 퍼져 나갔고 거리가 멀어 올 수 없는 농부들은 음식의 첫술을 들 때 고씨 노인의 명복을 비는 마음으로 고수레를 외쳤고 그러면 풍년이 들었다고 한다.

고수레는 근방을 다스리는 지신이나 수신에게 먼저 인사를 드리고 행사를 무사히 치르고 농사가 풍년이 들게 해 달라는 일종의 주문이고 기원이다. 또 근처의 잡귀들에게도 먹을 것을 주면서 너희들도 잘 먹고 물러가거라 하는 잡귀추방의 주술적인 의미도 있다.

첫술의 의미는 첫수확의 곡물이나 과일처럼 신에게 바쳐지는 공물이다. 또 조상을 섬기고 풍요를 비는 기원이다. 또한 고수레는 이러한 신앙적 의미 말고도 함께 어우러지며 같이 사는 공동체의 의미가 있다.

 

고수레로 던져주는 음식은 들짐승과 날짐승, 개미 같은 곤충에게 훌륭한 먹이가 된다. 땅에서 나온 이 음식을 나 혼자 먹는 것이 아니고 조상에게 또 여러 귀신들에게 예의를 갖추고 지나는 길손도 이끌어 함께 하며 하찮은 동물들과도 함께 한다는 생명존중의 의미가 숨어 있는 것이다. 혼자만 독차지하지 않고 이웃과 함께 한다는 것은 사랑이고 겸손이다.

누군가가 미신이라는 돼먹지 않은 논리를 펼지 모른다. 또 쓰레기처럼 생각해 흙을 오염시킨다고 펄쩍 뛸지도 모른다. 민속신앙은 미신과는 별개의 가치이다. 고수레는 절대로 땅을 오염시키지 않는다. 우리들이 먹는 음식은 모두 썩으면 거름이 된다. 고수레는 오히려 우리의 마음을 풍요롭고 따뜻하게 해준다.

저 혼자 잘났다고 날고 뛰는 현대인들이, 마음만이라도 매사에 고수레 정신을 이어받아 함께 어우러지는 세상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김종대의 <옛 것에 대한 그리움> 중에서-